
작가로서 ‘번아웃’을 극복했던 경험담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고 하지만, 막상 내 앞에 찾아왔을 때는 그것이 번아웃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다. 며칠 쉬면 다시 회복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글을 쓰기 위해 앉는 자리가 고문처럼 느껴지고, 손가락 끝이 키보드 위에서 멈춰 서는 순간마다 내가 더 이상 작가가 아니게 된 것 같은 공포가 몰려왔다.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나 자신이 비워져버린 것 같다는 감각이 더 무서웠다.
내가 번아웃을 자각한 건 어느 늦은 새벽이었다. 창밖은 어둡고 방 안에는 모니터 불빛만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커서만 깜박일 뿐 단 한 줄도 채워지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머릿속은 공허했다. 그 순간 나는 한참 동안 모니터 속 빈 화면만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사라진 자리에 글만 남아야 하는데, 정작 글도 나도 없는 허무한 공간 같았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써보려 했다. 하루 목표 분량을 맞추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손목에 힘을 주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나 결과물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억지로 짜낸 문장은 생명력이 없었고, 줄거리마저 억압된 기계음 같았다. 결국 삭제키를 누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싫어진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작가가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으면 영영 이어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몇 날 며칠을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책을 덮고, 모니터를 껐다. 대신 아주 사소한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바람 냄새를 맡고, 오래 듣지 않았던 음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손으로 커피를 내리고, 아무런 목적 없이 노트를 낙서로 채웠다.
놀랍게도 그렇게 글과 거리를 둔 시간이 나를 살렸다. 억지로 붙잡고 있던 글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먼저 회복되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서서히 ‘글을 못 쓰는 나’가 아니라 ‘글을 잠시 쉬는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리니 세상에는 여전히 글감이 가득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 놓치고 지나친 대화, 흘려보낸 감정들이 내 곁에서 다시 속삭였다.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작가로서의 나’를 너무 좁게 정의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전의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글을 쓰는 것도 삶의 일부이고, 멈추는 것도 삶의 일부라고 믿는다. 작가는 결국 사람이고, 사람은 기계처럼 무한히 생산할 수 없다. 멈추어야 할 때가 있고,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 그걸 인정한 순간부터 다시 글을 쓸 힘이 생겼다.
또 하나 도움이 되었던 건 독자의 흔적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댓글과 메시지를 흘려보내듯 읽어왔는데, 번아웃 시기에 다시 하나하나 곱씹어 읽었다. “작가님 덕분에 하루를 버팁니다.” “이 장면에서 울었습니다.” 같은 짧은 문장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했다는 사실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돌이켜보면 번아웃은 두려움이 아니라 경고였다. 더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나는 번아웃을 겪으며 나를 소모시키지 않고 오래 달릴 방법을 찾았다. 하루에 무조건 몇 천 자를 쓰는 대신, 글을 쓴 후 스스로를 보살피는 시간을 넣었다. 운동을 하거나, 짧게 명상을 하거나, 그냥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포함했다. 글이 나의 전부였지만, 글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의 나는 번아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다시 찾아온다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나는 내 글쓰기를 다시 세울 수 있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번아웃은 끝이 아니라 쉼표다. 그리고 쉼표 이후에 오는 문장은 언제나 더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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