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를 설명할 때마다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따뜻한 웃음을 짓곤 한다. 누군가는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고 결심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펜을 잡았다고도 말한다. 나의 경우는 그 중간쯤에 있다. 거창한 이유도, 대단한 각성도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고, 그것을 언어로 정리해두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글쓰기는 어린 시절의 낙서와도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고, 동시에 수많은 실패를 안겨준 고된 길이기도 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십 대 후반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 안에 앉아 노트에 끄적이는 습관이 있었다.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했지만, 나는 늘 교실 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것은 소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단편적인 장면들이었고, 때로는 일기의 연장선에 불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내가 겪은 감정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생각들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당시 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글이란 건 완성도가 높아야 하고,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 모순된 마음이 내게 첫 실패를 안겼다. 썼다가 찢고, 저장했다가 지우는 일을 반복하며 나는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처음 쓰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이 ‘내면의 넘침’이었다면, 초창기 실패담은 ‘남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글을 공개한 건 인터넷 카페였다. 그 시절 웹소설 플랫폼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고, 아마추어 작가들이 모여 서로 글을 공유하는 작은 온라인 공간이 있었다. 나는 밤새워 쓴 짧은 이야기를 올렸다. 누군가 댓글을 달아주기를 기대하며 잠들었는데, 다음 날 확인해보니 조회 수는 겨우 열도 되지 않았고, 댓글은 한 줄뿐이었다. “문장이 어색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한 줄이 나를 주저앉혔던 동시에 다시 일어서게 만든 신호였다.
실패는 연속으로 찾아왔다. 플롯을 세우지 않고 쓰기 시작했기에 이야기는 금방 길을 잃었고, 캐릭터는 스스로 무너졌다. 읽던 독자들이 중간에 이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었다. 왜 실패했는지를 분석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비교하고, 글쓰기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글쓰기는 영감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구조와 기술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한때는 하루에 열 장을 쓰기도 했고, 또 한때는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며칠을 허비하기도 했다. 초창기 실패는 단순히 문장력 부족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쓰는 습관의 부재,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독자에 대한 과도한 의식이 모두 실패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글쓰기가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끈기와 습관으로 다져지는 일이라는 진리를 배웠다.
내가 회고록처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은 누군가 내게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물으면, 멋진 팁보다 먼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수없이 실패했고, 그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나만의 충동이었지만, 그것을 유지하게 만든 건 오히려 실패에서 비롯된 학습이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초고를 열 번 고치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삭제 버튼을 누르거나, 용기를 내어 올린 글이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경험. 그 모든 순간이 쓸모없는 낭비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글쓰기라는 길 위에 놓여 있는 필수 과정이다. 나 또한 그 과정을 지나오며 조금씩 단단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었다. 그저 쓰고 싶어서, 말로 다 하지 못한 것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실패는 그 단순한 계기를 진짜 다짐으로 바꾸어 놓았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아마 중간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실패가 있었기에 나는 글쓰기를 계속 붙잡았다.
지금도 나는 완벽한 작가가 아니다. 새로운 글을 시작할 때마다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나 차이는 있다. 초창기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 덕분에 이제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다 무너져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글쓰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끝없는 장거리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또 다른 실패를 준비한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가능성을 준비한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계기와 초창기 실패담은 나의 뿌리이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독자에게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실패와 성공의 연속이 아니라, 실패 속에서 성공을 건져 올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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